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연시인데 연애를 할 수 없는 건에 대하여 (문단 편집) === 최후의 십자군 === [[타입문넷]]에서 연재되던 원안의 루트였다. 요안니스 8세의 삽질로 무라트가 침공해 혈전 끝에 코린토스 지협에서 주인공이 승리하고 마누일 2세의 책략으로 오스만이 물러가는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그 이후 주인공의 행동이 본편과 '''정반대'''다. 교회 통합만이 제국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인공은 로마로 가서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십자군 선포를 약속받고, 모레아로 돌아가 철저한 가톨릭 정책을 펼치며 반대 세력을 진압하고, 후스파 십자군에 참여하기도 한다.[* 물론 본편에서도 교회 통합을 추진하긴 하나 이렇게 무릎 꿇고 비는 게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추진한 것이다.] 마침내 1444년, 후냐디, 스칸데르베그와 함께 바르나 십자군을 구성한 그는[* 오스만의 세력도 실제 역사보다 약해졌고, 스칸데르베그와 모레아와 함께했으며, 바르나 전투의 결정적 패인이었던 브와디스와프 3세의 후냐디 말 안 들은 개돌(...)도 일단 비슷한 급인 주인공이 함께 있는 이상 더 잘 말릴 수 있을 테니 승리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 실제처럼 무라트가 얼마 전까지 십자군을 모르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라면 금상첨화.] 결국 [[아드리아노폴리스]]까지 수복하고 '''오스만을 발칸에서 몰아내는 것에 성공한다.'''~~셀라니크? 필리베? 에디르네? 그게 어디죠?~~ 총대주교 이사키오스는 즉시 대관식을 해 주겠다 약속했고 제국은 다시 부활하는 듯 했지만, '''교회 통합은 엄청난 반발을 샀다.'''[* 과거 [[미하일 8세]] 때는 [[아르세니오스 분열]] 와중에 교회 통합이 선포되자 그것으로 인해 반아르세니오스파가 통합파와 반통합파로 또 다시(...) 분열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결국 반통합파는 요안니스 8세를 살해한 뒤 디미트리오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기존의 총대주교를 투옥시킨 후 콘스탄티노스를 파문한다. 그리고 4천 병력을 이끌고 콘스탄티노스 친왕을 막으려 한다. 여기까지가 외전 투표까지 공개된 내용. '''아래부터는 타입문넷의 원안 내용이다.''' [include(틀:스포일러)] 하지만 내전 시도는 실패, 4천 병력은 그대로 깨강정이 난다. 주인공은 가볍게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입성해 황제로 즉위하지만, 전쟁과 내전~~수도 탈환한 뒤 벌써 내전만 다섯 번째다~~으로 인해 발칸 전체가 피폐해진 상태. 결국 주인공은 '''테살로니키로 천도'''[* 현대 그리스 지역만 놓고 보자면 콘스탄티노플은 국가의 오른쪽 구석에 위치해 있고(현대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는 수도를 중앙에 가깝게 두는 게 좋았다.) 그 위치도 주적인 오스만과 지척거리라 수도로 하기 좋은 곳은 아니다.(현대 터키가 굳이 천년고도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천도한 이유중 하나.) 테살로니카가 위치나 도시의 중요성등을 포함하면 천도할 만한 수도로 매우 적절한 편. 거기다 현대 테살로니카에서 가까운 알바니아와 불가리아의 대부분도 장악했을 테니까 수도로써 좋은 곳이기도 하다.]하고 행정구역을 전면적으로 개편한 뒤, 천운이 따르지 않는 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아나톨리아 수복을 포기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제시하여 [[그리스 왕국|근대 그리스]]의 토대를 이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